-
얼굴찡그림척도 grimace scale생존의 전술 2025. 11. 23. 03:44
두통일지
나는 두통을 달고 산다. 몇 년 전, 어디가, 얼마나 자주 아픈지 기록을 해본 적 있다. 평균 열흘에 한 번 정도, 평균 36시간, 90% 정도로 오른쪽이 아프다. 아픈 정도는 남들이 모르게 참을 수 있는 정도에서 결근하고 누워있어야만 할 정도로 다양하다. 식음전폐하고 누워있어야만 할 정도는 석 달에 한 번 꼴이고 주말과 겹칠 때도 많다. 다행이다.
통증 패턴은 눈 근처, 관자놀이, 정수리가 욱신욱신 쑤신다. 심하면 눈물이 흐를 때도 있다. 큰 소리가 나거나 물리적 자극이 가해지면, 큰 종을 친 것처럼 울리는 찌릿한 통증이 몇 초 간 전신을 타고 흘러간다.
이 정도면 직장을 갖지 못하는 거 아닐까? 그렇지는 않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다닌다. 식음전폐 수준으로 아플 때만 병가를 낸다. 하지만 평소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찡그려지기 때문에, 표정관리에 특별히 힘을 써야 한다. 그래서 남몰래 마음껏 얼굴을 찌푸릴 수 있는 컴퓨터 작업이 나는 제일 편하다.
얼굴찡그림척도 (grimace scale)


몬트리올 대학 Steagall Lab에서는 고양이 얼굴찡그림척도 앱을 만들었다.
동물의 고통을 수식화한 얼굴찡그림척도 (grimace scale)라는 것이 있다. 동물 실험이나 수의학에서 주로 쓰이기 때문에, 쥐 나, 개, 고양이용 표를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몇 개 찾아보면 알겠지만, 동물의 종류가 다르더라도 눈이 가늘게 찌푸려지는지, 코 주변을 둥글게 찡그리는지, (코주변을 찡그려서) 수염이 위로 올라가는지, 머리나 귀가 쳐지는 지를 본다는 면에서는 다 똑같다.
사람의 찡그림척도는 왜 없을까? 내 얼굴도 눈이 작아지고 입과 코 주변이 뭉치는 게, 동물들이랑 확연히 똑같은 데...
찾아보니 사람용 Wong Baker Scale이라는 있긴 하다. 나의 두통은 보통 2-4 정도로 생각된다. 그런데 사람은 말로 본인의 고통을 표현할 수 있고, 사회적 맥락에 따라, 문화에 따라 얼굴 표정은 관리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도구로는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사람들도 이런 표를 만들어서 객관적으로 썼으면 좋겠다. 타인의 고통을 엄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할리우드 주연급 배우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지속적으로 고통의 표정을 일부러 만들 수 있겠는가?

Dr. Paul Ekman처럼 표정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주 적용분야는 의학이 아닌 애니메이션 분야인 것 같다.
고통으로 인한 사람의 얼굴찡그림 스케일이 별로 발달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은 타인의 표정을 보고 그 뜻을 읽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아플 땐, “피곤해 보인다.”는 염려의 말을 자주 듣는다. 문제는 머리가 안 아파 본 사람은 나의 표정을 머리의 통증에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얼굴을 보고 머리가 아픔에 연결시키는 사람은 가족들 밖에 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왜 화났어?”라고.
머리가 아픈 나는 자주 화가 나 있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이 웃으려고 노력한다. 머리가 아플 땐.
머리가 아플 땐 내 머리통 생각만 난다. 차라리 무언가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머리가 아플 땐 글을 쓰기로 했다. 세상만사에 너무 신경을 써서 그렇다는 사람도 있는 데, 아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세상 걱정 없이뛰놀던 어린이였을 때도 나는 머리가 아팠으니까.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생각하기도 좀 힘들고, 타이핑도 힘들다. 하지만 분명히 통증은 잠깐잠깐 씩 잊힌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훅 간다.
참 다행이다.'생존의 전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에게 커피를 알게 해준 두통 (0) 2025.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