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이다. 내차의 사이드미러에 거미 한 마리가 거미줄을 쳤다. 나는 곧 여름 여행을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거미를 옮겨주려고 했지만, 요놈은 요지부동, 거울 뒤 공간으로 숨어버리는 바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놈과 함께 여행할 수밖에 없었다. 고속도로를 달렸고, 뉴욕시내를 누볐다. 비도 왔다. 걱정과 달리, 놈은 거울 뒤 공간과 바깥 거미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무사히 여름 여행을 함께 마쳤다. 하도 정이 들어 인도의 달콤한 디저트 이름을 따, 굴랍자문이라는 이름도 붙여 주었다.
놈이야, 살아있는 놈이니 바람 불면 거울 뒤에 숨는다 치자. 거미줄은 어떻게, 편도 340 Km가 넘는 여행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지도 출처: Google Maps
에이, 고쳐지었겠지…라고?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나는 내 눈으로 봤다. 고속도로 바람에 휘날릴 때 꿋꿋이 버티는 거미줄을.
거미줄 그물은 어쩌면 그토록 튼튼할까?
거미줄은 설계도가 없이 거미가 내 사이드미러 같은 특이한 주변환경에 따라 즉흥적으로 구조를 바꿔 짓는다. 게다가 우리 굴랍자문 집처럼 찢어진 거미줄은 거미가 매일매일 요리조리 요령껏 고쳐 놓는다. 기계로 찍어낸 것과 다르다. 거미줄은 씨줄과 날줄이 교차되며 그물모양을 만드는 데, 씨줄과 날줄의 세밀한 물리적 성질 차이로 인해 외부 충격을 비선형적 (non-linear)으로 흡수한다고 한다.
어렵다. 무슨 뜻이지? 부분 대미지 10 짜리 두 개 = 전체 대미지 20이 아니라는 뜻? 흠, 복잡하다. 그러니까 이런 구조를 복잡계라 부르자.
거미집은 놀랍도록 튼튼하다.
거미줄처럼 서로 복잡하게 얽힌 구조는 사실 세상에 정말 많다. 생태계·두뇌신경회로·우리 인간 사회·인터넷 망처럼, 수많은 구성원, 구성요소, 즉 노드 (node)들이 서로 연결된 구조가 바로 복잡계 (complex system)이다. 복잡계라는 말은 내가 대충 지은 게 아니다. 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복잡계는 서로가 서로 얼기설기 얽혀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잘 깨지지 않는다. 마치 막장드라마의 사각, 오각, 육각 관계처럼. 주인공들이 서로 여러 가지 관계를 주거니 받거니 하기 때문에, 이들의 세계는 완전히 끊어지기가 힘들다. 주인공들 중 한 사람이 줄거리상 고립되더라도, 이런 드라마에선 출생의 비밀, 애증의 과거, 하다못해 아주 아주 우연히, 다른 층의 연결관계를 통해 재등장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실타래처럼 설킨 주인공들이 축축 늘어지는 이야기를 한없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막장드라마의 비밀이다.
복잡계는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며 잘 깨지지 않는다. 서로서로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안정성은 단순히 연결 고리의 수가 많기 때문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노드들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가이다. 여러 가지 노드들이 많이, 층층이 얽혀 있을수록 시스템은 안정화되며 손상에 저항할 수 있게 된다.
다섯 명의 구성원이 있는 가정을 생각해 보자. 엄마와 네 명의 아이들이 사는 가정과 할머니, 엄마, 아빠, 아들, 딸 형제가 모여사는 가족이 있다고 치자. 이 두 가정의 엄마가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면 어떤 가정이 더 큰 충격을 받게 될까? 누구나 당연히, 첫 번째 가정이라고 답할 것이다. 똑같이 다섯 식구가 사는 가정이지만 첫 번째 가정은 엄마에 다섯 개의 노드가 연결된 불균질 한, 이질적 구조 (heterogeneous network)이고 두 번째 가족은 엄마는 서로 다층적으로 연결된 균질 구조 (homogenous network)다. 이런 가정에서는 엄마가 엄마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어도 할머니나 아빠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관계가 다양하며, 다층적이고, 기능적 중복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촘촘히 짜인 균질한 복잡계는 마치 거미줄처럼 외부충격을 흡수하기 쉽다.
인간사회라는 복잡계에서 나 같은 보통 사람은 아마 보통의 숫자의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다. 보통 성인은 그만 그만한 회사에서 중간 규모 부서에서 보통 정도의 팀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보통학생은 보통 수준의 학교에서 몇 명의 보통 친구를 갖고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으로 이루어진 복잡계는 이처럼 비교적 균질하고 안정적이라 무척 예측가능하다. 그 속의 몇몇 사람은 마치 한 가정의 가장처럼 좀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작은 허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모두가 거미줄의 그물눈처럼 비교적 고르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사회는 굴랍자문의 거미줄처럼 외부충격을 흡수하고 다시 균형을 찾는 힘이 강하다. 왜냐하면 어딘가 상처를 입어도 비슷한 다른 노드와 허브들이 충격을 분산시켜 전체의 건강함을 유지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결이 극도로 집중된 소수의 노드가 많은 세상을 생각해 보자. 초 대기업 회장님, 수백, 수천만의 팔로워를 가진 스타 인플루언서들. 이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큰 초대형 허브가 될 것이다. 몇몇의 유명인들과 그들을 부러워하는, 뿔뿔이 고립된 보통 사람으로 이루어진 사회. 이런 세상은 깨지기 쉽다. 이런 사회에서 대기업이 쓰러지면 많은 사람이 실직하고, 스타가 사라지면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세상이 충격을 흡수할 능력이 없이 무너져내기 시작하면, 아무리 대기업 회장님도 스타도 버틸 수 없다. 결과는 공멸이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 데, 이런 불안한 세상에선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거나 이 세상의 돈의 절반을 가진다고 해도 별로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이 불안하고 내일이 어찌 될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상 최대의 스타라 해도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무너질지 모를 화려한 외면 속, 내면은 너무나도 허무할 것 같다.
세상을 지탱하는 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다.
반에서 중간밖에 못해서, 사장님이 되지 못해서, 게임에 빠져서 몇 시간 낭비했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보통으로 살면서, 동네 사람들하고도 눈인사하고 지내고, 별것 아닌 동호회에서 보통 멤버로 활동하며, 오랜 친구와 술잔도 기울이며 보통으로 살면서 여러 가지 재밌는 일을 하며 작은 연결고리를 꾸준히 만들어가는 게 훨씬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