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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빠르긴한데...사실은 인간이 AI보다 일 잘하는 이유생존을 위한 현실분석 2025. 11. 22. 22:26
내가 어렸을 때의 텔레비전은 뚱뚱한 유리로 만들어진 기계였다. 이런 텔레비전은 조금 낡으면 화면엔 가로줄이 생기고 목소리가 지직거리곤 했다. 해결책은 손으로 텔레비전을 탁탁 치기. 할머니에게 배운 가전제품 수리 기술이다. 우습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게 이게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요즘의 전자제품 만병통치약은 리부팅, 즉 껐다 켜는 것이다. 스마트폰도, 랩탑도, 텔레비전도 이유 없는 바보짓은 리부팅으로 대개 사라진다.
만병통치약 리부팅
요리를 하려면 재료를 작업대에서 씻고 자르며 그릇에 담기도 한다. 부엌은 당연히 지저분해지며 나중에 청소하지 않으면 엉망이 된다. 컴퓨터가 프로그램을 돌릴 때도 비슷하다. 캐시, 버퍼, 메모리는 요리하면서 잠깐 쓰는 그릇, 선반, 도마 같은 것들이다. 이들이 지저분해지면 프로그램은 잘 돌아가지 않고 심지어 멈춰버리기도 한다. 개발자들은 메모리를 알아서 잘 정리하도록 코드를 짜지만, 쓸모없는 메모리인지 아닌지를 기계가 언제나 옳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늘 완벽하게 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어딘가에 남은 임시 메모리 조각들이 조금씩 쌓이게 된다. 조심하고 깔끔하게 정리해도 시간이 지나면 부엌이 음식 찌끼, 기름때 등으로 지저분해지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을 한방에 지워버리는 것이 리부팅이다. 메모리는 전기가 통하는 동안만 살아 있기 때문에 찌꺼기 메모리는 전기를 완전히 껐다 켜면 사라진다. 리부팅은 그러니까 부엌 대청소 같은 것이다.
컴퓨터가 365일 밤이고 낮이고 쌩쌩 돈다는 건 착각이다. 기계는 반드시 정기적으로 껐다 켜 주어야만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과열방지, 하드웨어교체, 업데이트도 해야 한다. 그냥 뒀다간 어느 날 그냥 죽어버리는 게 기계이다.
챗지피티를 예로 들자. 내가 심심풀이로 물어본 내 사주팔자 답을 내기 위해선 수많은 지피유 (GPU) 서버가 전 세계 어디 선 가서 돌아가고 있다. 이들은 여러 대가 항상 함께 같은 일을 하면서 혹시나 모를 고장이나 점검을 대비해 서로를 백업한다. 결국 같은 일을 한꺼번에 팀으로 일해야만 안정할 수 있는 구조이다. (여기서 벌써 우리는 인간의 자부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인공지능 시대가 열리자 사람은 감정적이고 예측 불가능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들 폄하하곤한다. 하지만, 사람은 마감이 닥치면 조금 아파도 참고 일할 수 있다. 업무에 지장이 올만큼 몸이 피곤해지지 않도록 스스로 알아서 기지개를 켜기도 하고 눈을 지그시 누르고 잠깐 쉬기도 하며 페이스를 조절할 줄 안다. 반대로 기계는 한 대가 한 사람의 일을 전담하여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지 않다. 또, 자신의 고장을 사람처럼 예민하게 느낄 수도 없다. 이상이 오면 몇 분, 몇 초의 여유도 없이 꺼져버린다. 그러므로 정말 똑똑한 범용인공지능 AGI 가 온다고 해도, 에이전트 혼자서 사람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늘 만일을 대비해 여러 대가 함께 일해야 하고, 누군가로부터 항상 유지보수받아야 하는 비싸고 까다로운 존재이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적어도 기계는 실수가 없다고.
컴퓨터는 정말로 오류가 일체 없을까? 컴퓨터는 0과 1 이진수로 돌아간다. 모 아니면 도다. 깔끔한 수학의 세계다. 계산은 수학이지만, 실제로 0과 1을 다루는 것은 트랜지스터라는 전기 스위치,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물리적 장치이다. 전압이 기준보다 낮으면 0, 높으면 1이다. 엄밀히 말하면 컴퓨터는 숫자가 아니라 전압이라는 물리량으로 작동한다. 전압은 방 온도, 전선의 품질, 태양풍, 우주선 (cosmic ray) 등등의 영향을 받는다. 번개만 잘못 떨어져도 0은 1로 뒤집힐 수 있다. 내가 과장하는 것이 아니다. 빗플립(bit flip)이라고 이미 알려진 현상이다.
트랜지스터만 문제가 아니다. 컴퓨터는 수많은 물리 부품으로 이루어진 기계 덩어리다. 카메라, 마이크, GPS 같은 장치들은 빛, 소리, 전파 같은 물리량을 감지해 전압으로 바꾸고, 이 전압이 0과 1 신호가 되어 컴퓨터에 전달된다. 출력 역시 같은 과정을 거친다. 이런 작은 부품들은 과열되거나, 전기공급이 불안정하거나 오래되거나, 먼지가 쌓이거나, 여러 사소한 이유로 쉽게 고장 나거나 오작동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컴퓨터 전문가가 아니어도 이런 문제를 일상에서 경험한다. 갑자기 인터넷이 느려져 영상은커녕, 이메일도 안 열리는 일, 어제도 멀쩡히 돌아가던 문제없는 프로그램을 돌려놓고 점심 먹고 오니 결과 출력은커녕, 멈춰 서서 아무것도 안 해 놓는 일말이다. 파워사이클 하고, 재부팅하고, 메모리정리하고. 기계와 일하려면 정말 해줘야 할 뒤치다꺼리가 많다. 인공지능도 예외가 아니다. 아는 게 많고 말이 유창하다고 해서 스스로 알아서 굴러가는 존재가 아니다. 아무리 아는 것이 많아도 본질적으로 기계이며, 다른 모든 기계처럼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하다.

우주선 (Cosmic ray) 때문에 마리오가 버벅? 출처: https://www.pcgamer.com/cosmic-rays-cause-tech-bit-flips-blue-scre 인간은 다르다. 자신을 희생해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 인간은 태양풍이 쳐도, 우주선을 맞아도 그 자리에서 드러눕거나 사망하지 않는다. 우리 몸에는 외부에서 침범하는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공격에 맞서 싸우는 정교한 시스템이 있다. 불에 데거나, 칼에 베이거나, 독감에 걸려도 우리는 버틸 수 있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도 심호흡 몇 번이면 마음이 웬만큼 추슬러진다. 그리고 큰 병만 없다면, 며칠 쉬는 것으로 몸은 저절로 좋아진다. 인간은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하면서 갈고 닦인 몸과 마음이 있다. 기계가 쉽게 넘볼 만큼 만만한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기계는 우리를 완전히 대체할 순 없을 것 같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자신감을 갖자.
(요즘 인공지능 버블론이 뉴스에 자꾸 올라온다. 나는 놀랍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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